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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서 ‘사각모’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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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서 ‘사각모’를 쓰는 이유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1.01.31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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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서 반드시 쓰는 학사모의 유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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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이민정] 올해도 어김없이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그러나 예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으로 간소화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전국 초·중·고·대학들은 이달부터 다음 달 첫 주까지 졸업식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개최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행사 특성상 대규모 인원이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졸업식 행사를 줌(Zoom)이나 유튜브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하거나 졸업장과 상장만 택배로 보내는 등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랜선 비대면 졸업식에 학생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비단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많은 학교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올해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전통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졸업식 날 착용하는 네모난 ‘사각모’이다. 일반적으로 졸업식을 떠올릴 때 검은 사각모를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이 사각모는 옛날부터 쓰였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지금의 사각모를 쓰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 ‘둥그런 모자냐 네모난 모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럽 학자들은 11세기 초기 대학이 등장한 이후 모자를 착용해 왔다. 당시 학문에 종사하는 것은 가톨릭교 성직자 가운데 지위가 낮은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은 본래 삭발을 한 수도사들이 착용하는 ‘피레우스 모자’라고 불리는 둥근 테두리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것이 14세기에 이르러 높아지면서 원통형에 가까워져서 현대의 요리사 모자를 줄인 형태가 됐다. 이 같은 형태의 모자는 ‘피레우스 로탕다스’라고 불렸고, 주로 법률·의학·과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착용했다. 

또 16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모자 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진 정사각형의 모자로 ‘피레우스 쿼드라타스’라고 불렸다. 둥근 모자에 비해 천이 적어도 되는 이 모자는 곧 성직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원형과 각진 모양의 두 스타일은 다양한 지위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17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졸업하지 않은 학생이 오래된 스타일인 원형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반면에 지위가 더욱 높아지면 피레우스 쿼드라타스를 쓸 수 있었다. 1675년에야 귀족 계급의 학생들이 각진 형태의 모자를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한편, 1600년대 중반에 설립되기 시작한 미국의 초기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본따 교육 체제를 갖췄다. 이 체제는 곧 미국 전역의 대학에 확산됐는데, 여기에는 유럽의 학생복 전통도 포함됐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는 법률·의학·철학을 배운 대학원생들은 둥그런 모자를 쓰며, 일반 학부생들은 네모난 사각모를 착용하고 있다. 

◆ 모자를 던지는 전통

이처럼 몇백 년 역사가 있는 졸업식 사각모에 미국이 새롭게 추가한 전통도 있다.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 일부 졸업생이 학위를 수여받은 후에 모자의 달린 술(태슬, Tassel)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테슬 세레모니’를 했다. 이 술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공식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지만, 졸업식 중에 술을 다른 한쪽으로 이동시키는 풍습이 퍼져 나갔다. 

초기 미국 졸업식 지침에는 기도할 때 제외하고는 늘 모자를 쓰도록 돼 있었다. 이것이 1912년 해군사관학교 졸업생이 새사관 모자를 받은 뒤 사관후보생으로 착용해 온 모자를 공중에 내던지는 일로 이어졌다. 이후 졸업모를 공중에 던지는 행위가 전국 졸업생들 사이에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졸업식 양상이 달라진다 해도 이 검은 사각모는 학업을 완수했다는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증거로 남을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깊은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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