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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퇴출...클래식(Classic)의 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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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퇴출...클래식(Classic)의 재정의
  • 한기일
  • 승인 2020.06.29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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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대의 클래식 영화들이 현재의 기준으로 다시 재평가 받아
인종차별, 부조리함을 비판없이 담은 작품들의 가치에 물음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시아경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시아경제

[프롤로그=한기일 작가] 예술적 개념의 '클래식(Classic)'은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분야에서 인류사에 기록된 영원성을 지닌 예술작품을 지칭한다. 클래식은 수준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후세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전통을 수립하고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 장르 속 클래식(Classic) 작품들

영화 장르 역시 뛰어난 클래식 작품들이 존재한다. 현대 영화의 선구적인 방향을 제시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1941), 갱스터 영화 장르의 획을 그은 <대부>(1972),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 세련된 서스펜스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등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영화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후대 영화인들의 창작적인 영감을 주는 뛰어난 클래식 작품들이 있다.

▲영화 '대부'의 한 장면
▲영화 '대부'의 한 장면

그중에서 아메리칸 클래식 대표작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있다. 마거릿 미첼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 개봉한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이 작품은 역대 물가 변동을 고려한 미국 박스 오피스 흥행 역대 1위는 물론이고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을 수상하며 한시대를 풍미한 걸작이다. 이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89년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등재되어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영화'로 인정 받았다. 나아가 1997년 미국영화연구소 (AFI : American Film Institute) '100년 역사, 100대 영화' 목록에서 4위, 2007년 업데이트된 버전에서 6위를 기록하며 미국영화계의 대표적인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Classic)의 '재정의'

시대의 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화로 인정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최근 '인종적 몰이해가 드러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각종 영화제와 OTT 서비스(HBO 맥스) 등에서 퇴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이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던 중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전역과 전세계적으로 대규모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미국 각지와 유럽에 남아있는 인종차별적 상징물에 대한 퇴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한 장면 ⓒ수도영화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한 장면 ⓒ수도영화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의 생활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노예제가 있던 당시 남부의 시각으로 철저하게 그려진 작품이다보니,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사회상을 큰 비판점 없이 그대로 녹여내 현재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될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 범죄집단 KKK(Ku Klux Klan)를 남부의 자경단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사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북부와의 전쟁(남북전쟁)에서 패배하며 바람처럼 사라진 남부 문명과 가치관에 대한 낭만과 향수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흑인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현대 관객 입장에서 영화가 주장하는 '남부의 낭만'은 그저 허울 좋은 노스텔지어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인종차별과 노예제도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는 드러나지 않지만, 당시 남부 사회의 핵심적 가치관을 위협하는 북부와 흑인을 천박한 시각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인종에 대한 몰이해적인 묘사로 인해 세월이 지나서 재평가되는 영화가 적지 않다. 현대 영화의 클로즈업, 플래시백, 교차 편집 등을 최초로 시도하며 걸작으로 평가받는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 역시 인종차별주의적인 선동 시각이 있어 시대가 흐른 뒤 그 평가가 크게 달라졌다. 또 오드리 햅번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영어가 어눌한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으로 묘사해 비판받고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퇴출 사례, ‘변화’로 이어져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서비스 퇴출 결정을 내린 HBO 맥스 측은 성명을 통해 "영화는 그 시대의 산물이며 불행히도 당시 미국 사회에 흔했던 윤리적, 인종적 편견 일부가 묘사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추후 역사적 맥락에 관한 설명과 함께 콘텐츠를 복귀시킬 것이지만, 별도의 편집을 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영화를 편집하는 건 이런 편견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과 마찬가지며 더 정의롭고, 공평하며, 포용적인 미래를 만들려면 우선 역사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퇴출 사례는 시대와 의식의 '변화'로 인해 예술이 가진 클래식의 영원성이 재정의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과거의 높은 질적 예술이 후대에 영향을 미쳐 하나의 전통을 수립하고 지속시키는 것만이 아닌 변화해야하는 '반면 교사'의 역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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