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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춰보기 부끄러운 ‘한국군 위안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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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춰보기 부끄러운 ‘한국군 위안부’의 진실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0.06.1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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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위안부, '특수위안대, 제5종 보급품'의 진실
대한민국 성 착취 100년사 다룬 연극 ‘공주(孔主)들 2020’…전석 매진 기염 토해
ⓒ영화 '귀향'의 한장면
ⓒ영화 '귀향'의 한장면

[프롤로그=이민정] 최근 한 달 가까이 ‘위안부 운동’에 흠집이 나는 논란이 있었다. 이에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 극복에 집중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을 삼갔던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을 깨고 직접 입을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태와 관련하여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위안부 운동의 본질을 깎아내리거나 훼손시키는 그 어떤 상황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진실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기까지 겨우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이고 부끄러운 기록 속에 일본군을 흉내 낸 또 다른 숨겨진 위안부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는 자국민에게 위안부 역할을 하게 한 대한민국 국군의 범죄였다. 

◇’한국군 위안부’의 탄생

한국 정부가 6.25 한국 전쟁 당시 국군에 군 위안소를 두고 위안부 제도를 운용했다는 주장이 공식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대한민국 육군본부에서 발간한 ‘후방전사’뿐만 아니라, 당시 군에 몸담았던 몇몇 예비역 장군들이 회고록을 통해 증언했으며 또한 참전자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할 여지는 없다.

이들은 국군을 따라다니며 전쟁터에서 빨래해주거나 밤에는 성 노예로서 살았으며, 주로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과 유엔군 장병들을 상대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는 점이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예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살'이라는 것이 있어서, 만약 위안부로 선택을 강요받은 이들이 따르지 않으면 가족들 모두가 죽음에 처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중 전선이 고착된 1951년 7월 이후부터 후방에서 사창가가 확대되었다. 법적으로는 1947년 이래 공사창제가 폐지되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사창가가 있어도 전투지에 주둔하는 군인들은 여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장교들은 현지처를 두었고 간혹 병사들이 강제로 데리고 온 여성들로부터 ‘성 상납’을 받기도 했다. 일반 병사들은 점령지 여성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군이 38도 이북 지역을 점령했을 때, 소위 인민군이나 빨갱이 가족, 여성들에 대해 거의 예외 없이 성폭력이 가해졌다. 이에 육군본부 측은 전선이 고착되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또한 전투로 노고가 많은 군인을 위로 및 포상하기 위하여 ‘특수위안대’를 조직했다. 전선에서 위안부대의 출입은 하나의 ‘포상’이었던 셈이다.

◇'특수위안대, 제5종 보급품'의 진실

이들 위안부는 단순히 군역 성매매 여성 혹은 성적인 착취를 당한 여성에 대한 후대의 지칭이 아니라 1950년대 당시에 ‘특수위안대, 제5종 보급품’ 등으로 불리었다. 후에 미군기지 주변의 기지촌 여성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이는 명백히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시절 일본군이 운용한 위안부를 모방한 것이다. 국군 초기 간부들이 거의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이었던 것이 한몫했다. 일제 군대 문화와 제도들을 사실상 답습한 것이다.

1952년 특수위안대 실적통계표에 따르면 그해 서울의 3개 소대 특수위안대와 강릉의 1개 특수위안대에 속한 위안부들이 20만 명이 넘는 군인을 상대했다. 다만, 여기서 나타내는 실적은 4개 위안대에 직접 출입한 군인들의 통계인지 전선 부대에 출장을 간 위안대를 이용한 군인들의 통계까지 포함하는지는 불명확하다.

이러한 끔찍한 진실은 오랫동안 숨겨져 수면 아래에 묻혀 있다가 2002년 한성대학교 김귀옥 교수와 한국 정신대 연구소의 강정숙 연구위원들의 논문과 기고로 인해 세상에 드러났다. 다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지 못했고, 대한민국 어느 역사책에서도 특수위안대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연극 ‘공주(孔主)들 2020’…전석 매진 기염

최근 이 같은 소재를 다룬 연극이 대학로에 펼쳐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극 ‘공주(孔主)들 2020’은 구멍의 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극단의 설명이다.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극단 신세계ㆍIRO Company

극 중 '김공주'의 이야기는 1944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부장 가정에서 난 그는 언니들과 달리 공부를 하고 싶어 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부모가 아닌, 인신매매 업자들이었다. 밥 먹여주고 공부시켜준다는 꾐에 넘어가 강제로 끌려간 곳은 버마(현 미얀마). 김공주는 그렇게 일본군 위안부가 됐고, 하루 수십 명의 군인들이 그의 자리를 밟고 간다. 해방 뒤로도 앞글자만 바뀌었을 뿐 그의 위안부 서사는 일본군에서 한국군으로, 다시 미군 위안부로 강제로 때론 떠밀리듯 이어진다.

연극은 주인공 김공주를 통해 본 대한민국 성 착취 100년사를 다루며, 국가와 사회 가족과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녹였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임에도 '12공주'로 분연한 젊은 배우들이 극장 안을 정신없이 오가며 울고 웃는 사이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은 끝난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무대에 오르게 된 '공주들 2020'은 지난 9일 늦은 오후부터 14일까지 6회분 공연 전 좌석이 매진됐다. 극단 신세계 관계자는 9일 "예매 10분 만에 티켓이 모두 팔렸다"면서 "코로나19로 공연 기간이 짧아지고, 좌석 간 거리 두기로 인해 극장 내 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품 3년 차라 그런지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찾고 있는 거 같다"라고 반겼다.

※정의연 사태 :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인 윤미향 비례대표 당선인의 기부금 횡령 의혹 등의 행보를 중심으로 불거진,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왔다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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