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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들이 전하려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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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들이 전하려 했던 것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1.05.18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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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시아 여성 감독 수상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감독과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클로이 자오 감독과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프롤로그=이민정]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21)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미국 네바다주의 경제 붕괴 이후 밴을 타고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현대 유목민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인 ‘노매드랜드(Nomadland)’가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노매드랜드의 제작을 지휘한 중국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이 유색인종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아시아 여성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아카데미상은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었는데, 클로이 자오 감독의 수상으로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다양성 있는 행사로 남았다. 이에 더해 여우주연상에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수상했다. 

◇ 자유와 고독, 사회라는 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다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노매드(Nomad) 영화라는 장르가 있다. 거주지도 가지지 않고 어느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으며 기차나 자동차 혹은 도보로 여행을 계속한다. 언뜻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거기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라붙는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여성 노매드 영화의 원점이라 할 만한 것이 1985년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의 ‘방랑자’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농촌의 개울가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플래시백으로 그 여성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여정을 쫓으며 그녀의 방랑 생활을 추적한다. 페미니즘 영화로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여성 영화감독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여성 로드무비가 등장했음에도 여성 노매드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age Crisis)*에서 비롯된 리먼쇼크가 흐름을 바꾸었다.

경제공황이 낳은 빈곤과 의욕적인 여성 영화감독들의 진출로, 2010년 전후부터 미국에서는 조금씩 여성 노매드 영화가 등장하게 됐다. ‘빈곤은 가차 없이 여성으로부터 살 곳을 빼앗는다’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진 영화를 기획하고, 또 그것을 가책 없이 찍을 수 있는 것 역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판 ‘방랑자’라고 할 만한 2008년 켈리 리처드 감독,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웬디와 루시’이다. 주인공 웬디는 영화 ‘인투더와일드’의 주인공처럼 집을 잃고 자동차로 알래스카로 떠나려 한다. 그것은 문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알래스카라면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지 않을까 하는 절망적이기까지 한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또 영국인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미국에서 촬영한 ‘아메리칸 허니:방황하는 별의 노래’에서는 잡지를 팔며 여행하는 집단을 그린 점에서 군상극이었지만, 샤샤 레인 역을 맡은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며 가난으로 인한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점에서 이 역시 여성 노매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 노매드랜드(Nomadland), 그것은 ‘리얼’에서 태어났다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Joshua James Richards/Searchlight Pictures

그리고 올해 봄 드디어 개봉한 것이 영화 ‘노매드랜드’이다. 이 영화는 2017년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에세이 ‘노매드랜드 :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원작과는 사뭇 다르다. 프로듀서이기도 한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클로에 자오 감독과 함께 주인공 ‘펀’의 인물을 새롭게 조형해 논픽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펀은 어느 순간 집도 일도 가족도 잃고 캠핑카로 이동 생활을 시작한다. 맥도먼드는 책에서 읽은 진짜 노매드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아마존(Amazon) 배송 센터나 국립공원 캠프장 등에서 일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촬영해나갔다. 그리고 주인공 ‘펀’은 여행의 과정에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 간다.

이 영화는 지난해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35년 전 같은 상을 받은 것이 바르다 감독의 ‘방랑자’였다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미국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된 미국만이 아닌 국제금융 시장에서 신용경색을 불러온 연쇄적인 경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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